김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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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umu 작성일17-10-31 11:23 조회1,354회 댓글0건본문
[퍼온글]고독한 낭만주의자- 건축가 김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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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8 07:00:39 조회 (200) | 추천 (0) 본문
고 독 한 낭만주의자 김 중 업
김중업 선생은 1900년대 식민지와 6.25전쟁의 소용돌이로 인해 세계 건축의
흐름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멋모르는 ‘고집’으로 일관한 우리나라의 건축적
상황에서 서구의 모더니즘을 한국 건축으로 승화시킨 최초의 건축가이다 .
자기만의 독특한 건축적 경지인 서양건축의 한국화 혹은 한국건축의
현대화를 이룬,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건축가가 바로 이사람이다.
1922년 3월 9일, 평양에서 5남 2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터 감수성이 예민하여 시와 그림에 탐닉하던 그는 그림교사의
권유로 1941년, 요코하마 고등 공업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하여 파리
에꼴 데 보자르 출신의 나까무라 준뻬이교수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 후, 일본의 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힌 뒤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52년 베니스국제예술가 대회에
참가, 여기서 근대건축의 건축가 거장, 르 꼬르뷔제를 만났다.
몇년 안되지만 "르 꼬르뷔지에"사무실에서 수학하고 국내로 귀국하려는
무렵 김중업 선생의 역량을 펼치기엔 한국이 너무 협소하다고 지적한
사람이 "르 꼬르뷔지에"였다.
파리에 있는 르 꼬르뷔지에 건축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면서 현대 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들이 설계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였다. 4년후인 1956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사무실을 개설하면서 자신의 창조성을 보다
확대하고 미래를 향한 거대한 세계를 펼치는 작품활동을 하려 하였다.
그러나 꼿꼿한 선비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성격, 비타협적인 작가의식때문에
유신시절의 군사정권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해오다 1971년 11월 거의
반강제적으로 출국 당하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로 추방되어 해외에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1978년 11월에야
영구 귀국하게 되었다.
1988년 5월 11일, (지병이었던 당뇨)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서울대 교수, 홍익대 교수, 프랑스 공인건축가,
하버드 객원교수 등을 거치면서 필그림 홀 계획안(56년),
부산대학교 본관 및 유수 대학의 건물들,
주한 프랑스 대사관(59년), 부산 충혼탑(80년),
서울올림픽 기념비(85년) 등 국내외에 대략 200여개의
프로젝트와 작품을 남겼다.
김중업. 그에게는 미완의 시인, 한국 현대건축의 별, 가장 한국적인 건축가 등등
뒤에 따라 붙는 수식어가 여럿이지만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사실
고독한 낭만주의자라고 나는 감히 말하곤 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연유는 우선 그의 작업이 낭만적인 조형성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요, 그의 생애 자체가 예술가로서 낭만적 삶을 살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생전에 몇 차례 만나 대화를 나눠본 바로는, 그는 볼 때마다 여유로운 웃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부드러움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부드러운 여유 뒤에는
정 반대의 날카로운 시선도 있었으니 이는 건축가의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이 그 안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좋았다.
<글 : 이주연 >
그는 오랜 외유 끝에 돌아와 국내에서 작업을 시작하면서도 서구적 양식을 우리네
정서와 전통문화에 잘 적용시키려는 작가적 고민을 수없이 해오면서
작품을 만들어냈다.
서구 일변도의 양식을 극복하려는 그의 작가적 의지가 그를 한국 현대건축의 태두가 되게 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건축가로서의 수련 여정을 토대로 일궈낸 그의 작업은 그의 대표작이자 한국 현대건축의 대표작 중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탄생시킨다.
실제로 각종 설문조사 통계 결과를 보면, 주한프랑스대사관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건축물, 우리나라의 전통을 현대에 가장 잘
표현한 건축물 반열에서 대부분 맨 앞을 차지하곤 했다.
그는 이 작품을 계기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을 받았다.
김중업의 건축세계
조형의식이 단일하지 않고 오히려 이원적이고 대립적이라는 사실은
거장들의 작품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김중업의 작품에서도
첫째, 굵게 움직이는 선,
둘째, 작은 원이 서로 병치되면서 하나의 전체를 구성,
셋째, 예각으로 된 삼각형의 선, 이 세가지 요소가 이원성으로
단조로움 대신 깊이와 미묘함을 느끼게 한다.
그의 작품중 ‘나의 작품세계에 하나의 길잡이가 되었고, 이것으로부터 비로소 건축가 김중업의 첫발을 굳건히 내딪게 되었다’ 라고 자평하기도 했던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완공후 10년이 지나면서 지붕에 균열이 일어나
지금은 다른 지붕이 올려지고 주위환경 또한 많이 변했지만,
그 당시 시공기술을 고려할 때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서구건축과 한국건축의 이질적인 요소인 공간의 인식과 건축의 구축체계를 절묘하게 해결한, 한국 현대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로
한국 ‘현대건축의 원점’이라고 세인들은 평하고 있는 작품이다.
집을 지을 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우선 향입니다. 남향이 아니면 문제가 생기거든요. 그 다음에는 거기서
살아야 할 당사자들을 생각합니다. 가족과 장본인의 취미도 고려의
대상이 됩니다. 거기서 적정넓이가 나옵니다.
그 다음에는 배열을 잘해 쓸모있게 꾸며줘야 합니다.
말하자면 집을 통해 그 사람의 자화상을 그려주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의 이성적 측면보다는 비합리적 정서, 감성, 영감 등을
중시하며 시적이고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던 그는,
비록 지금은 운명을 달리하였지만 아직도 그의 작품은 현재성을 잃지 않고 그의 영혼이 함축되어 심원한 시적 울림의 조형언어로 살아 숨쉬고 있다.
[그 밖의 김중업 작 품]
건국대학교 도서관
소 재 지 .: 서울시 성동구 모진동 93-1
준공년도 : 1957 년
시설분류 : 교육연구시설
연 면 적 .: 1,480 m2 (448 평)
구조형식 : 철근콘크리트조
내부마감 : 수성페인트
이 건물은 구릉상에 위치하여,호수와 주변 캠퍼스를 내려다 보고 있다.
중앙의 원형공간을 중심으로 3개의 날개가 외부로 뻗은 ㅅ자 형태로 2,3층 매스는
1층에서 돌출하고, 중앙의 원형 공간 지붕도 처마를 돌출하였다.
곡면으로 확산하는 매스, 리듬있는 멀리온 창, 현관부의 투스칸오더 기둥과 곡면진 캐노피,
그리고 산뜻한 외부계단은 유려한 면모를 보여 준다. 원형공간은 서고로 계획되고,
그 주위를 돌며 램프를 설치하며 주 날개부에 열람실을 두었었다.
서강대학교 본관
소 재 지 .: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1-1
설계년도 : 1958 년
시설분류 : 교육연구시설
건축면적 : 1,221 m2 (369 평)
연 면 적 .: 4,066 m2 (1,230 평)
구조형식 : 철근콘크리트조
이 건물은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며, 서향 배치로 교문에서 진입시 정면이 부각된다.
3층의 수평적 매스는 남측의 5층 수직적 매스와 대비되며, 정면인 서측 입면은 RC조 태양광 차단장치, 현관의 캐노피, 옥상의 처마형태 들로, 남측 입면은 수평적 발코니로, 북측 입면은 곡면 화장실로 구성되었다.
옥상정원과 현관 연못을 조성하여, 이 연못은 스테인드 글라스 벽밑을 통하여 내외부가 서로 통하도록 하였다.
서 산부인과 의원
소 재 지 .: 서울시 중구 신당1동 13
준공년도 : 1965 년
시설분류 : 의료시설
건축면적 : 162 m2 (49 평)
연 면 적 .: 594 m2 (180 평)
구조형식 :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 노출콘크리트조
을지로와 퇴계로가 만나는 삼각형의 좁은 대지위에 세워진 병원과 주택을 위한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한 외벽은 자유로운 곡면으로 벽, 발코니 그리고 경사로를 구성되어 있다.
유기체같은 이 독특한 형태는 근대건축 이래로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격자형
모듈로부터 결정적으로 탈피하고 있는 작품이다.
"건축이란 하나의 뚜렷한 싸인이며 인간의 감성에 던져지는 강한 몸짓" 이라는 작가의 의도와 같이 태어나는 삶에의 찬가를 표출하고 있다. 유기적인 형태의 표현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미술관 (주한이탈리아 대사관)
소 재 지 .: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1
준공년도 : 1967 년
시설분류 : 전시시설
연 면 적 .: 926 m2 (280 평)
구조형식 :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 노출콘크리트
원래 개인의 저택으로 건축하여 이태리 대사관저로 사용해 오다가 현대 미술관으로 개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측에서 필로티 하부를 회전하여 진입하는 체계는 르 꼬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와 유사하다.
동남측의 기둥들에 각층들은 받쳐져 있어서 대담한 켄틸레버와 그것을 구성해주는 격자의 골조들이 전통건축의 구조미를 생각해 내기에 충분하다.
각층은 바닥판과 기둥구조로서 자유로운 평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 건물은 한국의 사원과 궁궐이 가졌던 아름답고 멋있는 요소들을 창출하여 우리의 얼을 강력하고 뚜렷하게 심으려고 하였다.
대담한 지붕을 받치는 기둥들의 주변을 유리블록으로 처리한 것은 더욱 지붕아래 부분을 밝게하며 부유성을 조장하고 있다.
삼일로 빌딩
소 재 지 .: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 10
설계년도 : 1969 년
시설분류 : 업무시설
건축면적 : 1,070 m2 (324 평)
연 면 적 .: 5,891 m2 (1,782 평)
구조형식 :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 알루미늄커튼월
내부마감 : 콜텐스틸
청계천로변에 위치하는 이 건물은 1960년대말 당시 서울의 최고층 건물로서 서울의 발전상을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이 건축의 작가인 김중업의 예술이 주로 관능적인 조형이었던바에 비해 이 건축은 그의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인다.
즉 전형적인 국제주의 스타일로서 단순한 직립된 입체로서 완결되는데, 재료는 검은색 콜텐 스틸과 착색 유리로 제한되었다. 자연히 디테일의 장식성을 과감히 생략하며 프로포션만이 중요한 조형의 요인으로 남게된다.
평면은 코어와 사무소 공간이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어 각층의 사무소 공간은 독립성과 가변성이 뛰어나다.
한국교육개발원 신관
소 재 지 .: 서울시 서초구 우면동 산20-1
준공년도 : 1983 년
시설분류 : 업무시설
대지면적 : 52,066 m2 (15,750 평)
건축면적 : 1,450 m2 (439 평)
연 면 적 .: 4,620 m2 (1,398 평)
건 폐 율 .: 2.78 %
구조형식 :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 알루미늄유리커튼월+본타일
수 상 : 한국건축가협회상(82),대한건축학회 작품상
경부고속도로 진입로변의 우면산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 건물은 한국교육방송의 연구,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기능이다.
도시의 구조에서 벗어난 대지의 조건에서 건축은 매우 자유로운 조형을 이루는데, 필로티로 들리워진 유리의 기하학적 볼륨이 자유롭다. 즉 외면의 집열판, 철재와 유리 등 현대적인 재료가 김중업의 형태감 넘치는 조형성을 이루는 것이다.
또한 현관을 들어서면 다이나믹한 계단의 구성을 갖는 인상적인 아트리움과 만난다.
이 건물은 1982년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하였다.
육군박물관
소 재 지 .: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설계년도 : 1980 년
건축면적 : 3,051 m2 (923 평)
연 면 적 .: 6,000 m2 (1,815 평)
구조형식 :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 화강석+ 전돌
수 상 : 대한건축사협회상(1983)
육군사관학교의 캠퍼스에 있는 대지조건에서 건축은 독자적인 자태를 충분히 나타낼 수 있어, 직방형과 원통형의 두개 매스가 자연을 배경으로하는 웅장한 기념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 박물관은 군사전문박물관으로 보물 10점을 비롯하여 선사시대로 부터의 군사사료 약 3,500여 점을 상설전시하고 있다.
그의 공간은 중앙홀을 중심으로 좌우의 2개 볼륨으로 나누어 지는데, 사무실과 강당의 직방형 날개와 독립된 전시관의 원통형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서 도넛형 평면의 전시관은 전시구성에 무리가 있으나, 필로티 위에 얹어놓은 형태로서 인공 연못에 비쳐지는 형태미는 한국의 전통적 정서에 결부된다.
1983년도 대한건축사협회상 대상을 받은 바 있다.
88올림픽 상징조형물(평화의 문) 및 광장
소 재 지 .: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설계년도 : 1985 년
준공년도 : 1988 년
대지면적 : 33,600 m2 (10,164 평)
건축면적 : 1,303 m2 (394 평)
연 면 적 .: 978 m2 (296 평)
건 폐 율 .: 3.88 %
구조형식 : 철골철근콘크리트조
내부마감 : 화강석+동판+단청
수 상 : 건축가협회상1989, 한국건축가협회상(88)
올림픽 공원의 정문이자 88서울 올림픽의 평화적 상징물로서 의미를 갖는다.
이 기념물은 1985년에 시행되는 설계경기로서 김중업의 안을 당선작으로 하여 구현된 것인데, 이 작품은 1989년 건축가협회상울 수상하였다.
문의 형식성을 한국적 정서로 번안하며 다이나믹한 조형이 이루어지게 하였다.
지붕의 메시브한 볼륨은 강력한 켄틸레버로서 트러스와 SRC구조로 되어있다.
지붕 밑의 모자이크는 백금남의 작품인 작품이고 주변에는 이승택의 조각이 동조된다.
출처 발췌:<집은 노래 불러야 한다>정인하지음,
<시적 울림의 세계>정인하지음, 네이버 블로그 > 푯대를 향하여
Naver 지식 inde9898 집필자, 네이버 이미지, 엠파스 이미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