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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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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umu 작성일17-10-31 11:26 조회3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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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 PORTRAIT  건축가 조병수 

작업 환경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건축가 조병수를 만나다.
건축가 조병수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난 건축가 조병수는 작업 환경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미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여러 나라 출신의 파트너들과 함께 건축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며, 미국의 여러 주에 작업실을 갖고 있고 서울에서도 조병수건축연구소를 꾸리고 있다. 

이렇듯 시공의 제약을 뛰어넘어 활약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문화를 담고 조합하는 그릇으로서의 조병수, 본인의 넓고 깊음에 기인한다. 다양한 경험, 다양한 문화권과의 만남을 통해 그의 세계는 지금도 끊임없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건축가협회(AIA) 본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이름을 나란히 하고 있는 그의 존재와 활약은 세계 건축계에 한국의 건축과 문화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자연스레 하고 있다. 

컨셉트에 대한 고정관념을 스스로 견제하며 주변 환경과의 어울림을 고려하는 집 짓기 방식. 사람, 자연, 집,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프로그램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그의 작품들은 꾸밈없이 넉넉하며 효용적이다. 작품으로는 어유지 동산, 배재대학교 예술관, 카메라타, 용천리 배교수댁, 춘해대학, Gallatin Park Office Building  등이 있다.

ASA 선생은 현재 미국 몬태나 주립대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다른 학교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국에도 사무실을 둔 건축가로서, 생활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하다.
JO 대개 미국과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반반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방학 때를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꽤나 많다. 강의는 오래전부터 하고 있는데, 서울 성북동에 사무소를 연 이듬해인 1995년도에 1년간 독일의 대학에 조교수로 가 있었고, 1999년도부터 미국의 몬태나 주립대학교에서 풀타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에는 하버드대학에서도 강의를 했고…. 올해 가을 학기부터는 2년을 주기로 몬태나 주립대학의 학생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한 학기 수업을 받게 될 예정이다. 한 클래스의 구성 인원은 10~14명가량이 될 것이고, 장소 등은 앞으로 이곳 대학과 협의를 해야 할 듯하다. 학생들의 교류로부터 시작해 많은 교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하버드대학 등 클래스의 학생들이 한국에 방문해 한국 건축가들과 세미나를 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교류를 조금씩 전개한 바 있다.   


CASA 강의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작품 활동 또한 활발하다. 선생에게 지리적인 제약은 문제가 되지 않는 듯 보인다. 

JO 보스턴과 몬태나에 각각 사무실이 있다. 뉴욕과 샌디에이고에도 함께 일하는 팀이 있고. 미국 현지에 머물 때는 낮에 수업하고 저녁 때 전화로 업무를 확인한다. 현재와 같이 한국의 사무실에 미국 쪽 직원이 와 있는 것처럼 물리적인 오고 감이 잦은 것도 물론이다. 하지만 최근 대부분의 일은 인터넷을 통해 진행한다고 보면 된다. 작업을 보낸 뒤 다음날 출근하면 일이 진행되어 있는 등 거리에 따른 시차가 일의 피드백을 오히려 효율적으로 돕는다. 점차 어디에 있는가는 덜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비단 내 경우뿐만 아니라 앞으로 인터넷의 활용도는 점차 커질 것이며 어떤 직종이든 국가와 지역 간의 경계는 사라질 것이다. 나는 최근 미국에서 작업을 할 때 인도 쪽 인력들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CASA 얼마 전, 효율을 중심으로 지구가 조합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The World is Flat] (지구는 편평하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선생은 지구가 편평해지고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의 활동 또한 적지 않지만 역시 선생은 미국을 기반으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건축가다. 미국 출신의 건축가를 주 대상으로 하는 미국건축가협회(AIA)의 정회원이기도 하고. 이러한 현재의 배경에는 아무래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유학이 뒷받침이 된 듯하다. 

JO 달리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유학을 떠났다. 어린 시절, 큰형님이 연필을 아주 날카롭게 깎아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그 모습이 어린 마음에 아주 멋있어 보였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 데 동경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막연히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고 할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즈음 문을 연 세종문화회관에서 마침 드로잉 전시가 있었다. 전시 내용은 자세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거기서 봤던 도면들로부터 꽤나 강한 자극을 받았고, 어떻게 하는지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 설비나 전기 등 공학에 관련된 것들도 두루 배웠지만 건축과가 예술대학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예술적·창의적인 측면에 대한 커리큘럼이 내게 아주 잘 맞았다.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건축과가 예술대학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지만 내가 대학을 진학할 때만 해도 한국에서 건축과는 대부분 공과대학에 속해 있었다. 그 이후 대학원에서는 조각이나 미술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우선 5년제 학부를 졸업한 이후 보스턴에서 실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대학원은 그후에 진학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미국이라는 곳은 스스로 노력하는 만큼 인정해 주고 이해해 주는 곳이어서 의지를 가진 이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CASA 선생의 사무실은 견고한 퍼즐로 완성한 그림 같은 느낌이다. 완벽한 벽이자 담으로도 보이는 두터운 목재로 만들어진 문은 통유리를 통해 시각적으로 오픈된 사무실 이쪽 저쪽을 편한 대로 연결하고 차단하는 동시에 밖을 향한 문의 기능도 하고 있다. 사무실 왼쪽으로는 내후성 강판을 이용해 키 낮은 화단을 둘러두었는데, 그런 물성의 부딪힘에서 묘한 파장이 생기고 있다.

JO 소재 연구에 굉장히 정성을 기울이는 편이다. 사실 지난 학기 하버드대학에서 다룬 강의 주제도 ‘물성의 연구’였다. 재료 자체는 아름답지 않은데 그것이 어떤 형상을 이룰 때, 그리고 작품 속에서 다른 재료와 대비되었을 때, 새롭게 아름다울 수 있다. 또한 굉장히 평범하고 거친 소재의 경우 표면의 표현을 조금만 다르게 해도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낀다. 소재에 대한 연구는 끊임없이 하고 있다.

CASA 이 공간뿐만 아니라 선생의 작품들에서는 우리 고건축의 장점이 아주 모던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외·내부 공간의 소통이 자유롭다든가, 자연과 언제나 마주하고 있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JO 내가 건축을 할 때 변함없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형태적인 것보다 그 공간이 어떻게 경험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리고 땅을 많이 훼손하지 않는 것, 마당과 같은 외부 공간을 두는 것 두 가지는 주택뿐만 아니라 상업·문화·교육 공간 등 많은 작품에서 의식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1994년, 처음 사무소를 낸 후 일산에 지은 주택에서도 마당을 중심으로 가족이 살아가는 정경을 그리고자 했다. 현재 공사 중인 건물인 삼청동 사간갤러리에도 중정과 마당을 두었다. 또한 청담동 폭스바겐 골목 안에 있는 웹스갤러리 역시 가장 도시적인 풍경 속에 있는 건물이지만 원래의 땅을 존중하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완공을 앞둔 청담동의 ‘비트위스트’라는 유치원은 두 동으로 나뉜 가운데 중심부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

CASA 선생의 작품들은 송학리 산돌담집, 어유지 동산 등 유독 직선이 두드러진 형태감이 인상적이다. ‘나무 상자를 엎어놓은 듯한 둔중한 매스가 땅 위에 떠 있는 형태’라고 표현되는 양평군 세월리의 집들 역시 그러하고.
JO 직선은 가장 경제적인 형태다. 작업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도면 그리기와 짓기가 쉽다. 사용자 또한 그러하다. 방들 사이로 빛과 공기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형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내적 경험은 다채로울 수 있도록 설계하려고 한다. 하지만 풍요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떤 방법도 고집하지는 않는다.

CASA 미국 건축지 에서 세계 건축을 선도할 11대 건축물로 선정되는 등 화제를 불러일으킨 배재대학교 예술관과 몇몇 공공 건물을 제외하고는 용천리 배교수댁, 송학리 산돌담집, ㄷ자 양철지붕집 등 국내에 발표된 선생의 작품은 주로 주택이 많은 듯하다.

JO 주택은 건축가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대상이다. 작은 규모를 통해 트레이닝할 수 있으며 아이디어와 건축에 대한 생각을 담고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펼친 아이디어가 공공 건물에 적용됐을 때 또 어떻게, 합당하게 펼쳐질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크다. 실제로 내가 유수의 기관으로부터 큰 상을 받은 것은 대개 공공 건물이었다.

CASA 문화예술 마을 헤이리가 조성된 초창기, 일반인들에게 건축과 예술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는 마을로서의 이미지를 대표적으로 전달한 곳이 바로 황인용 음악감상실로 알려진 ‘카메라타’다. 음악을 존중하는 이가, 음악의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설계한 건물이라는 느낌을 받은 기억이 있다.

JO 작업자로서는 무엇에 비길 데 없이 반가운 평이다. 하지만 카메라타도 비평을 받으려면 충분히 받을 만한 작품이다. 우선 공간 너비와 높이의 비례에 있어 정석을 벗어나고 있지 않나.
하지만 나는 언제나 건물이 땅에 잘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사용하고자 하는 용도에도 잘 맞아야 하며 편안해야 한다. 
카메라타에서는 소리만이 중요하며 소리를 ‘듣는’ 것만을 목적으로 완성된 건물이다. 그래서 소리를 듣는 데 필요하지 않은 다른 형태를 많이 만들지 않고 심플하게 작업하고자 했다. 

어떤 사건이 그 안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뜻에서 기능이라는 표현 대신 ‘프로그램’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카메라타는 대지와 프로그램이 딱 맞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대지와 프로그램의 일치는 내 작품 모두를 관통하는 중요한 과제다.

CASA 선생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JO 아름다움은 가장 중요한 것이며 사실 그것을 찾고 만드는 재미 때문에 건축을 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에는 여러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내겐 창의적인 아름다움이 가장 아름답다. 나는 언제나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을 찾고 싶어한다. 즉, 바로 느껴지지도 않고, 뭔지도 모르겠지만 묘하게, 그리고 두고 볼수록 아름다운 것. 어디서 많이 본 것, 익숙한 아름다움, 일반인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 등은 유사하게 만들기가 쉽지만 스스로 실험을 거쳐 새로운 것을 찾는 즐거움은 이 직업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CASA 작가들과 그 작품의 히스토리를 더듬다 보면, 어떤 계기를 통해 작품 스타일이 변화하거나 진화하는 분기점을 접하게 되는 일이 많다. 선생에게도 그런 분기점이 있는지. 

JO 내 경우에는 어떤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시간과 함께 자연스레 흘러왔다. 처음 건축을 시작했을 때는 건축주와의 대화 자체가 어려웠다. 우선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7~8년가량 작업을 하다 보니 내 작품을 알고, 또 이해의 부분을 가지고 의뢰해 오는 클라이언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수 있는 분기점이 자연스레 생겼다. 분명한 것은, 건축을 처음 공부하던 시기부터 심플한 건축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점차 심플해지고 있다. 어떤 계기를 통해 두드러지게 변화해 왔다기보다는 스스로 여러 가지 테스트를 거치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형태를 향해 조금씩 근접해 가고 있는 듯하다. 구조, 시공, 재료 사용법 등에서 점차 원하는 대로 해 나가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CASA 선생에 대한 배경 지식을 넓히고자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사무소의 건축사 모집 공고를 보았다. 학력 부분이 눈에 띄었는데 대학 졸업자가 아닌, 고등학교 졸업 이상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편견의 세상 속에서 조금 뜻밖이었고, 반가웠다.  

JO 진짜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학력과 관련이 없으니까. 그러나 고졸 이상이라면 누구나 사무소의 식구가 될 수 있다는 우리의 방침을 오히려 취업 희망자들이 선뜻 믿지 못한다. 학력에 대한 고정관념은 고용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 이 사무소에는 아주 다양한 경력, 다양한 출신의 직원들이 모여 일하고 있고, 제 몫들을 훌륭하게 하고 있다. 사무소 운영 방법 또한 딱딱함을 견제하기 위해 ‘달리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달리는’ 내 작업 방식과 같이 체계적이기보다는 순발력을 무게중심으로 두고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따른다. 그리고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순발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규모에 따라 조직적 움직임에 대한 요구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 직원들로부터 창의적인 마인드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 따른다. 어떻게 끌어갈 것인가 하는 것은 계속해서 풀어야 할 과제다.

CASA 작가로서 실패한 경험은 없는가. 

JO 땅과의 관계에서 가장 많은 실수를 하고 있다. 즉, 대부분의 실패는 땅을 잘못 해석한 경우에 벌어진다. 그 다음으로는 크기의 관계다. 내 몸과 건물 크기와의 관계에서 오류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림으로 그렸을 때는 아름답지만 실제로 작업해 보면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도면상으로는 인식되지 않는 부분이 여전히 있다.

CASA 삶의 각 단계마다 갈망하는 성숙의 경지가 다를 것 같다. 선생이 현재 지향하는 인간적 성숙의 형태에 대해 들려 달라. 

JO 질문과는 조금 방향이 다른 답이 될 것 같지만, 내 경우를 비추어 일반론을 만들어 보자. 30대에는 일을 잘하고 싶을 것이며, 40대에는 축적된 능력을 바탕으로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얻기를 원한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에는 근본적으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비로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사회 구조가 그렇게 엮이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건축가도 다르지 않을 텐데, 이런 수순을 거쳐 스스로의 실력이 정리되고 사회적 안정을 찾은 이후에는 자기의 근본적인 사고를 다시금 찾아나가게 되는 것 같다. 청년 시절 내가 쓴 대학원 졸업 논문의 제목이 (경험과 인식)이었다. 경험과 인식은 내 몸과의 관계다. 재미있는 것은, 그 논문에서 추구했던 것에 가까워지고 있는 현재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제서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그보다 창조적인 회귀의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새롭게 창의적으로, 지금까지 해온 것을 모두 떨쳐버리고 새롭게 찾아나가는 것이 요즘 나의 화두다.


CASA 창조자에게 있어 그의 능력을 발견하고 길을 인도해 주는 이와의 만남은 아주 중요하다. 선생의 오늘을 견인하는 만남의 기억이 있다면 들려 달라. 

JO 내겐 대학 시절 은사님 세 분이 무척 특별한 존재다. 우선 몬태나 주립대학에 처음 입학해 적응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준 밥 싱어라는 교수님이 있다. 건축 프로그램 디렉터이기도 했던 그분은 타국에서 공부하는 학생에게 친아버지와 같은 정을 베푸셨다. 지금은 작고하신 빌 샘플 교수님은 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분이다. 당시 슬라이드를 보며 건축가를 소개하는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유학생이 따라가기에는 무척 버거운 수업이었다.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가 수업을 못 알아듣겠으니 강의 노트를 빌려 달라고 청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날 만큼 당돌한 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무척 고민하신 듯했다. 빌려줄 만한 강의 노트가 없던 교수님은 그날 이후 언제나 수업 전, 그날 진행될 강의 내용을 두 페이지 정도 빼곡하게 메모해서 내 책상 위에 올려 두셨다. 단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그 이후 설계 과목을 가르치실 때에도 설계에 대한 근본적인 대화를 많이 나누며 내가 성장하게끔 도와주셨다. 그리고 나의 멘토라 할 수 있는 밥 미커라는 교수님이 있다. 대학 4학년 때 보스턴에 직장을 잡아주시며 그분의 모교인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할 것을 충고해 주시는 등 현재의 내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친 분이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받아왔고, 지금 빚을 갚아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현재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건축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중이다. 우선 그렇게 한 걸음씩 시작하려고 한다.


CASA 건축이라는 언어를 통해 아이들에게 문화적 체험을 제공하는 계획인 것인가? 건축 문화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자세히 들려주길 바란다.   

JO ‘아카릴레이’라는 이름을 붙여봤다. ‘Architecture, Culture, Relay’를 줄인 것으로, 문화적으로 자연스레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에 ‘운동’이라는 단어 대신 ‘릴레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목적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의 주변에도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뿐만 아니라 젊은 예술가들에게도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그 작업의 출발점이 될 전시 공간을 이곳 사무실 아래층에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공사가 완료되면 젊은 작가들이나 학생들을 위한 무료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우선 한 달에 한 번, 전시를 개최하고 인터넷에 관련 소식을 뉴스레터 형태로 띄워 많은 이들의 참여를 유도할 예정이다. 
그 이후 축적된 컨텐츠를 모아 책을 만들어 지방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교재로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양방향의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점차 미국, 유럽으로도 확대된다면 좋겠지. 실제로 몬태나 지방의 아티스트들 몇몇도 이 계획에 동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일단은 우리 색깔로 정착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세계의 젊은 아티스트, 어린이들 모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아카릴레이’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공사가 완료될 때쯤이면 계획도 좀 더 구체화될 것이다. 

CASA 선생은 서울의 도시 계획에 대해서도 관심 있다고 들었다. 공공 건축이 이뤄지는 수순 등 서울의 도시 설계는 그리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JO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겠지. 서울, 정말 아름답게 개발되어야 할 텐데, 지금 상태로는 걱정이다. 시스템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서울 시내의 녹지 부분, 공항에서부터 걸어서 10분마다 작은 공원을 만나도록 한다거나 자전거 도로는 어떻게 구성할지 등의 문화적인 플랜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 공공 건축이며 도시 설계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산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많은 건축가들이 공감하는 대로, 정치하는 이들이 결정하는 것이 문제라 할 수 있다. 그후 행정 처리하는 이들이 2차적으로 일을 굳힌 뒤 자본이 개입되고 있지 않나. 그렇게 굳혀지고 계획된 뒤 건축가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이 마지막 단계다. 
그런 시스템은 건축가를 바보로 만들 수밖에 없다. 용산공원과 같은 서울의 전반적인 도시 계획과 연계되는 부분에 대해 걱정이 앞선다. 이와 같은 것은 도시 맥락에서 50년, 1백 년 플랜을 세워야 할 부분이다. 
그러기는커녕 선거일에 맞춰, 혹은 규모나 사이즈에 맞춰 결정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특히 지방자치제로 바뀐 이후,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그들에게 자질이 있어 전문가와 함께 진행한다면 다행일 테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전문가 집단이 있어서 그들이 주도하거나 최소한 시민들의 뜻을 반영하게만 해주어도 좋을 것이다. 새만금개발계획도 그래서 실패한 것이 아닌가.

CASA 이미 낡은 사안이긴 하지만 청계천 복원에 대한 선생의 의견도 궁금하다.

JO 청계천은 결과적으로 잘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이건 운이 좋은 경우이지 않나. 한 명이 힘을 갖고 결정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도 있지만 실수가 나올 가능성은 더 많기 때문이다.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시민들도 그것을 알아야 한다.
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진행되는 일도 또 다른 관점과 시대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수정이 되겠지만 최소한의 일관된 맥락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장기적인 안, 그것도 최종안이 아닌 수정해 나갈 수 있는 안을 지녀야 한다. 


CASA 지금 서울에서 안고 있는 가장 큰 화두는 한강이 아닐까 한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한강 복원을 논의하는 한강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 땅의 건축가로서 선생은 한강에 대해 어떤 의견이 있는지 들려 달라.

JO 한강은 1988년도에 너무 많이 망가져 버렸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는지 기억해 내기조차 어려울 만큼 너무 황폐하고 썰렁해진 그곳의 복원은 정말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현재는 고민이 많은 만큼 너무 많은 복원안이 산발적으로 튀어나오고 있는 듯하다. 
‘큰 그림을 가지고 1백 년 후 이런 한강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겠다’라고 할 수 있는 안으로 집중되길 바란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시민들의 생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페리 운항을 통해 교통망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은 올봄, 4월 즈음이 될 듯한데 서울시청에서 미국, 한국의 학생들과 함께 한강을 테마로 한 전시를 계획 중이다. 그 전시를 통해 전문가들은 물론, 관련 행정인들을 만날 기회가 늘게 될 것 같다. 또한 아울러 건축에 종사하지 않는 시민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고민에 동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물론 한강 복원에 좀 더 현실적으로 참여할 기회가 내게 주어진다면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의무이며 사회적인 책임이 아니겠는가.  

CASA 도시 설계에 대한 논의에는 필연적으로 생태 건축 혹은 환경 건축이 뒤따르는 것 같다.

JO 생태는 영어로는 ‘Sustainable’, 즉 혼자서 태어나고 돌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진정한 생태 건축은 보기 드물다. 
허구가 분명히 있다. 나무를 재생해서 쓴다고 가정해 보자. 그 나무를 재생하기 위해 기름과 같은 자원을 훨씬 많이 쓸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재활용 과정조차도 진정으로 생태적인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종이를 재활용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을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쓴다면 생태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나. 차라리 나무 한 그루를 심어 키우는 것이 진정으로 생태적이다.

CASA 건축가로서, 선생의 생태 건축을 실현시키는 방법은 어떠한가.

JO 학생들로부터도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면 나는 서슴없이 돈이 적게 들어가는 것이 가장 생태적이라고 답한다. 현재의 생태 건축은 너무 비싸다. 어떤 재료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결국 쓰레기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그게 과연 진정한 ‘Sustainable’인가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내 경우, 같은 비용이 들어간다면 목재료를 사용한다. 산림 훼손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비생태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무는 또 자라나는 것이며, 더 빨리 자라는 나무를 쓴다면 충분히 생태적일 수 있다. 자원의 재활용 이전에, 자연 스스로의 본래적인 순환을 거스르지 않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옳다. 하지만 보다 넓은 의미로 확대해 생각한다면 생태 건축은 재료에서 추구하는 것보다 사회 문화적인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보다 10여 년쯤 앞서 생태 건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독일인들의 경우, 아파트 공간에서 주차장을 따지기 이전에 내 텃밭을 따진다. 생태 건축이란 그런 관점에서 논해지는 것이 순서다.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CASA 순환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혼자의 몸이 아닌, 사회 속의 직업인이자 창작인인 선생은 순환적인 삶을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

JO 한국에 있을 때면 가능한 한 매일 한강변을 걷는다. 평상시에는 6~7킬로미터 걷는데, 시간이 허락할 때면 16킬로미터 정도를 걸을 때도 있다. 운동은 꽤 열심히 하고 있는 편이다. 또 정신적으로 맑은 느낌을 회복할 수 있어 사찰이나 종묘를 많이 찾아 다닌다. 그리고 아무리 바쁘더라도 인상적인 작품이 지어지면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보러 가곤 한다. 계속해서 배워야 하지 않겠나. 


CASA 민화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지금 사무실에도 민화가 걸려 있다.

JO 서민들의 손을 거쳐 남겨진 민화를 실물로 접하면 굉장한 힘을 느낀다. 붓을 비롯해 형편없는 도구를 이용해 그린 그림들이지만 미학적인 면에서는 아주 뛰어나다. 격식이나 제약 없이, 자유롭게 그린 민화들은 독창적이며 새로운 세계로 가득하다. 그 추상성과 모던함은 서구의 샤갈이나 피카소에 견줄 바가 아니다. 민화를 통해 창조적인 힌트를 많이 얻는다. 그리고 단순히,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CASA 건축이라는 공통된 화두만 간직한 채 실로 다양한 문화권을 삶 속에서 체험해 왔다. 지금 한국의 학생들에게 우리 문화의 현주소에 대해 한마디만 들려준다면 어떻게 얘기할 것인가.  

JO 우리는 문화적인 부분에서 서양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받았다고 생각해 오고 있지만 실은 기원전 5세기부터 이미 동서양의 문화는 교류가 이뤄지고 있었다. 
당시 중국 문헌에 그리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같은 시기에 정립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동양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추상’이라는 개념이 있어 왔다. 축약과 함축은 동양의 표현법 아니었나. 즉, 인상파는 동양의 예술과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고 이는 모더니즘으로까지 연결된다. 그들에게 새롭게 사물을 보는 관점을 터준 것은 다시 말해 동양이다. 자, 다섯 가지 색만으로 그림을 그린 몬드리안의 작품과 오방색을 사용한 우리의 보자기를 한번 비교해 보라. 얼마나 유사한지 놀랄 것이다. 결코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건축 또한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교류가 있었고, 각자의 지형과 기후에 맞춰 응용되고 버려지는 과정을 거쳐 왔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면 좋겠다. 

CASA 앞서 잠시 언급된 ‘달리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달리는’ 선생의 작업 방식은 융통성 있는, 그리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끊임없이 수정해 나갈 수 있는 솔직한 삶의 자세로도 생각된다.  

JO 사실 그 작업 방식은 효율성에 위배되는 듯해 지인들로부터 핀잔을 많이 듣는다.(웃음) 실제로 남들이 1백 미터를 달려 목적지에 도달한다면 나는 2백50미터는 달려야 같은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러나 평범한 길을 달릴 때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지 않겠나. 새로운 것을 보게 해주는 돌아가는 길,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CASA인터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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