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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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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umu 작성일18-06-08 16:11 조회1,3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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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지 않았기에 가능했지요 -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
뉴스 2007/08/31 16:02 
http://news.kbs.co.kr/bbs/exec/ps00404.php?bid=101&id=486



속이지 않았기에 가능했지요 -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



광주 비엔날레의 예술총감독 임명을 놓고 불거진 신정아씨의 가짜 박사 사건이 권력층의 비호설 여부로 확대되면서 관련자들의 대리변명 등으로 갈수록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1941~)이다. 이 건축가가 얼마나 대단한가 하면 세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프리츠커상(賞)을 1995년에 수상한데다가 1997년 영국 왕립건축학회 로열 골드메달 수상, 2002년 미국건축학회 골드메달 수상, 그리고 그 전인 1991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건축작품전을 열었다는 것. 또 도쿄대와 예일대, 하버드대, 컬럼비아대의 객원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다채롭고 화려한 이 건축가의 학력, 곧 대학은 빈 칸이다. 말하자면 대학을 안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번듯한 정규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고 당당히 대학에서, 그것도 세계적인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다. 

1941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화차기관사로 취직하면서 복싱계에 뛰어들어 복싱으로 돈을 벌기도 했다. 이 와중에 잠시 헌책방에 들렀다가 20세기 건축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을 소개하는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코르뷔지에의 작품을 본 순간 “건축, 이거 재미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으로 그의 인생은 180도 전환된다. 23전 13승 3패 7무승부라는, 그리 나쁘지 않은 전적을 뒤로 하고 건축에 뛰어들어 독학을 하기 시작했다. 한 대학교수가 창립한 부설 연구반인 ‘Semi Mode연구반’에 등록하고 잠시 공부를 한다. 어느 정도 지식이 쌓이자 21살이 되는 1962년부터 복싱으로 번 돈으로 세계 건축여행에 나선다. 프랑스와 영국·미국·독일·스페인·모스크바·아프리카를 돌며 8년 동안 수많은 고전 건축물을 스케치했다. 그것이 세계를 놀라게 한 그의 건축공부의 전부였다. 



‘근대건축과 동양적 세계관을 결합한 건축가’ ‘건축의 누드작가’, ‘자연과 명상의 건축가’ 등 그를 수식하는 말은 수없이 많지만 그의 건축은 기존의 서양건축의 논리를 넘어서서, 과거 동양의 건축이 모두 자연과 밀접한, 자연과 공존, 공생하는 점에 주목하고 자연 그 자체를 느끼고 체험하는 건축이다. 그래서 콘크리트 벽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빛. 바람. 물 등 주변 자연을 끌어들인다. 

1976년에 지은 첫 번째 출세작인 「스미요시 연립주택」은 사용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바람과 빛의 감촉,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의 양상을 즐길 수 있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에어컨이 필요 없이 빛과 바람만으로 생활을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



1988년 만든 「물의 교회」는 홋카이도의 평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부근의 개울에서 물을 끌어들여 인공호수를 만들었다. 물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지만 물 옆에 교회를 둠으로써 세례나 속죄의 의미를 내면으로 느낄 수 있다. 



오사카 이바라키 시의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는 「빛의 교회」는 

예배당의 벽에 벽에는 십자형으로 슬리트가 뚫어져 있어서 아침 햇살을 

받으면 빛의 십자가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1989년 작품이다.



2000년 완공된「아와지 꿈의 무대」에서는 빛을 이용하여 하늘에 액자틀을 두어 구름을 가두기도 하고 변화하는 그림을 계속 만들어낸다. 곧 구름이나 자연이 곧바로 액자 속의 그림이 되는 것이다. 



지난해 문을 연 도쿄의 '오모테산도 힐스'도 안도의 작품이다. 패션숍과 식당이 들어선 3층짜리 건축물로, 도쿄의 새 랜드마크가 됐다. 낡은 아파트를 리노베이션하면서 건물 앞 느티나무와 높이를 맞춘 것이 화제였다. 건물 한가운데가 3층까지 뚫렸고 나선형 복도를 따라 오르면 시야에 들어오는 공간의 모습이 속속 바뀐다. 관광 명소가 됐고 일대 부동산 가격이 45%나 치솟았다.



최근 미술관 기행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나오시마(直島) 프로젝트의 베네세 하우스, 지중미술관도 안도의 작품이다. 미술관이면서도 겉으로는 미술관이 아니고 그 속에 들어가야 비로소 미술관이 되는, 자연친화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그의 일련의 건축들이 세계적인 화제와 주목의 대상이 되면서 미국의 대학들이 잇달아 그에게 강의를 요청했다. 1987年 예일대학, 1988년 컬럼비아 대학, 1989년 하버드 대학에서 각각 객원교수를 맡으며 강의를 했다. 세계의 건축계가 그의 건축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배우려 한 것이다. 

그의 건축을 감히 나와 같은 무식쟁이가 평할 수는 없지만, 근본은 현대건축의 기능을 추구하면서도 그 기능의 바탕을 일본의 전통적인 공간개념에서 찾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일본인들이 생성해 온 일본 만의 독특한 공간개념, 그 개념에 담긴 윤리적, 미학적인 원리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근대적인 재료와 방법으로 재구현해 낸 것이다. 



“나는 기능상의 기본을 바탕으로 하여 건축을 기능으로부터 해방시키려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나는 건축이 얼마나 기능을 추구할 수 있는가, 끝

까지 지켜본 뒤, 이번에는 건축이 얼마나 기능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 

있는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다. 건축의 중요함이란 건축과 기능사이의 

좁은 틈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도 다다오

그런 까닭에 그는 유럽이나 북미의 여러 건축비평가들에 의해 전통적인 (서양의) 근대건축과 극동의 세계관을 결합한 대표적인 동양의 건축가로 불려지고 있다. 그의 건축은 흔히 '침묵의 건축'으로 불려지며, 지금은 작고한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han)'과 견주어진다. 이러한 그의 은유적 작품성은 기독교인이 아니면서도 교회건축을 가장 많이 설계한 건축가로 기록되는 첫 번째 아이러니를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건축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 그의 건축세계를 더 이상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요컨대 그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서도 세계적인 대학의 교수로 초빙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의 건축세계가 독자적이며 독창적이며 그만큼 신선한 충격이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남의 작품세계를 모방하거나 훔치지 않고 그 자신의 것을 찾아낸 때문이다. 이것을 일본의 전통문화의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전통문화가 갖고 있는 특성을 잘 찾아내어 이를 현대화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다른 면으로는 그만큼 일본이라는 사회가 굳이 학벌에 눈을 가리지 않고 예술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안도 다다오는 스스로 공고만을 나오고 한 때 열차 기관사였고 복싱선수였다는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 있는 그대로의 일본의 생각, 있는 그대로의 일본의 자연을 받아들이고 이를 예술화함으로써 그는 우리나라 건축계가 가장 부러워하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사회는, 바로 우리처럼 속이지 않고 진실로서 승부를 하기 때문에, 우리가 갖지 못한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1987년(단게 겐조)에 이어 1993년(마키 후미히코), 1995년(안도 다다오) 등 세 차례나 수상하는 것이다. 

가짜와 속임수가 판치는 우리나라가 가장 부러워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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